학교에서의 사회화에 대한 두 가지 입장
현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필수과정으로 지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의무교육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2019년 2학기부터는 점진적으로 고등학교과정 또한 의무교육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여 국민들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관점이 있겠지만 이 글에서는 사회통합의 관점과 지배이데올로기의 습득 과정이라는 관점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내세우는 의무교육의 명분은 국민교육의 보급과 그로 인한 국력 확보, 사회 통합과 규범 교육으로 인한 질서 확충,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발전이다. 때문에 학교에서는 기존 사회의 행동 양식이나 규범, 도덕, 전통적인 가치관과 질서 등을 가르치게 된다. 그러나 마르크스나 알튀세르는 이러한 과정이 지배이데올로기를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는데, 학교에서 교육하는 이러한 사회의 행동 양식이나 규범, 도덕, 질서 등이 결국은 지배 계층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을 위하여 노동하는 기존의 사회적 틀이 보다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그들의 비판 의식이나 저항 의식을 약화시켜 순응하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회화에 대한 두 입장의 상세
학교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사회화를 사회 통합의 한 과정으로 본 학자들은 쿨리, 미드, 뒤르켐, 파슨즈 등이 있다.
쿨리는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자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아이들을 이끌어 나가는 행동을 했을 때 교사로부터 아이들을 선동하는 장난꾸러기 취급을 받는다면 그 아동은 그러한 적극성을 수정하고, 해당 교사의 바람대로 조금 더 얌전하고 수동적인 아이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반대로 같은 행동을 했을 때 적극적이고 리더십 있는 차세대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를 교사로부터 받는다면 어떨까? 그 아동은 자신의 적극성과 리더쉽을 더욱 더 강화하여 나갈 것이며, 해당 교사의 기대 대로 실제로 다음 세대의 지도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쿨리는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학교에서의 사회화는 상호작용을 통한 자아의 형성 과정으로 보았다.
미드는 자아를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주체적인 자아인 ‘나(I)’ 와,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대상적 자아인 ‘나(Me)’로 구분하였다. 아동은 가장 먼저 부모, 가족 등과 상호작용하면서 타자의 기대를 학습, 내면화 하고, 성장함에 따라 학교 등 사회 집단의 기대를 학습, 내면화 하는 것으로 보았다.
뒤르켐은 학교에서 아동을 사회화시킴으로써 사회 통합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나 도덕, 규칙, 가치관을 형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파슨즈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보편적 가치나 규범은 물론, 그와 함께 사회 체계의 요구에 맞게 행동하도록 교육하고 그 구성원이 성장하여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학교의 목적이라고 보았다.
이렇게 학교에서의 사회화를 사회 통합의 한 과정으로 본 이론과 함께, 학교 과정을 지배 이데올로기를 습득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다. 바로 마르크스와 알튀세르이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교육하는 여러 가지 사상과 규범, 가치관 등은 지배계층인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학생들이 사회화되는 학교 교육 과정을 지배함으로써 피지배계급의 정신 세계나 가치관을 지배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지배계급이 가진 논리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는 늘 근면, 성실, 정직 등의 가치관을 중요하게 가르치지만,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는 노동자의 근면, 성실, 정직으로 인하여 지배계층이 앞으로도 계속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지배계층에 유리한 사회 체계를 공고히 하는 과정인 것이다.
알튀세르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비판, 계승하였는데, 그에 따르면 학교의 역할은 피지배계급을 사회화함으로써 지배계급이 강조하는 자본주의 논리와 자유시장, 재산의 사적 소유 등에 대한 논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기존의 불평등한 사회 구조에 대하여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수긍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 호명이론을 통하여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이 부여한 역할을 어떻게 충실히 따르는 가에 대해 설명하였다. 지배계급이 원하는 대로 노동력을 제공하고 생산을 하는 피지배계층을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이 마치 이 사회의 주요 지배계층, 주요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심어 주는 것이다. 흔히 공익광고에서 많이 사용되는 문구인 ‘당신이 이 사회를 만들어 나갑니다’ 등의 멘트가 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피지배계층은 여기에 호응함으로써 국가나 법률과 같은 주체에 복종하게 되고, 지배계층이 바라는 대로 스스로 노동자로서의 역할에 아무런 의심 없이 몰두하게 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루어 지는 사회화는?
그렇다면 학교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사회화는 사회통합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지배계층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 위한 것일까? 필자는 둘 중 어느 것 하나도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 한다. 사회의 유지와 통합, 발전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살인, 절도, 폭행과 같은 사회 질서와 단합을 해치는 행동에 대한 제제가 있어야 하며,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건강한 가치관을 교육시켜 사회 통합을 유지 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학교는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도덕과 규범, 규율을 학습시키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층이 끊임없이 이러한 교육 과정에 손을 대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지배이데올로기를 습득하도록 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 한다. 아직도 학교에서는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으며, 잘못된 상황에서도 사회를 탓하기 보다는 개인의 노력을 강조하며 어려운 상황에서 묵묵히 노력하여 성공한 인생을 만들어 낸 위인들의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은 개인의 노력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에 대한 불만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내가 지배계층이 되지 못한 이유는 나의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개인의 실패를 사회가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지배계층에 대한 불만의 싹을 자르고 더욱 더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게 노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이 개인의 성공을 크게 좌우하는 것 또한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구조적인 문제를 고쳐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또한 개인이다. 문제에 당면했을 때에 개인의 탓만 하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거시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고, 사회가 더욱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함과 동시에 거기에 개인의 노력을 더하여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학교에서의 교육을 진행하여야 할 것이다.